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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 6 minute read

2019년 10월 31일

"출판사에서 책을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 전에는 책을 읽지 않았어요. 사실 의도적으로 피했죠. 너무 친숙한 이야기일 것 같았어요."

'82년생 김지영'을 영어로 번역한 제이미 챙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저도 82년생이고, 책 내용을 알고 있었거든요. '또 다른 비극적인 내러티브는 싫어'라며 일부러 읽지 않고 있었어요."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중국, 대만에 이어 오는 2월에 영국에서 사이먼앤슈스터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다.

3년 전 출간된 소설은 최근 영화로 제작돼 지난 23일 개봉했다.

BBC 코리아는 북촌의 한 한옥 카페에서 제이미 챙을 만나 번역의 뒷이야기와 함께 여성으로 또 성 소수자로 한국 사회에서 겪은 경험을 들었다.

그는 "나는 한 번도 소수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제이미 챙은 어린 시절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고, 또 캐나다에서 동성과 결혼식을 올린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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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숙한 이야기'

Q. 번역 의뢰는 어떻게 받게 됐나요?

민음사로부터 요청을 받았어요. 왜 저를 선택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번역한 '드래곤 라자(Dragon Raja)'를 읽었다고 들었어요. 사실 두 작품은 매우 다른 장르이긴 한데, 어찌 되었건 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듯해요.

Q. '82년생 김지영'은 언제 읽었나요?

번역 의뢰를 받고 나서 처음 읽었어요. 사실 의도적으로 피했죠. 너무 친숙한 이야기일 것 같았어요. 저도 82년생이고, 책 내용을 대충 알고 있었거든요. '또 다른 비극적인 내러티브는 싫어'라며 일부러 읽지 않고 있었어요.

Q. 주위에서는 뭐라고 했나요?

제일 많이 한 얘기는 '책이 너무 한국적인데 외국 독자가 왜 읽겠어'라는 거였어요. 우린 특정 여성혐오가 한국, 혹은 동양 문화권에서만 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장자상속제, 남성선호 등은 서양 문화권과 유대교와 기독교 사회에도 만연해요.

'맘충' 번역 어려웠다

Q. 김지영과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나요?

사실 저는 6살 때 한국을 떠나 11살 때 돌아왔고 16살 때 또다시 한국을 떠났어요. 김지영처럼 남성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엄마도 아니죠.

하지만 정말 공감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특정 사건으로 인해 내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이에요. 김지영은 학창시절 남학생이 따라와 위협을 느껴요. 저 역시 13살 때 만취한 남자가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 공격을 당한 적이 있어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이 공격당했을 때 그 여성은 그 경험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비난을 받기도 해요. 김지영도 당시 아버지에게 혼났고 저 역시 그 사건에 대해 이후 아무 말도 못 했죠.

Q. 번역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전혀 없었어요. 조남주 작가의 문장은 매우 깨끗하거든요.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큰 도전이었고 진이 빠지는 작업이었어요. 번역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여성 혐오를 직시해야 했거든요.

번역하는 내내 김지영에게 '왜 목소리를 내지 않아?', '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라고 물었어요. 그리고는 깨달았죠. 김지영은 '이제 남녀 평등이 실현됐다', '이제 여성이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요.

생각해보면 김지영에게 그 삶이 강요된 것은 아니에요. 김지영은 매 순간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결정을 했어요. 신중했고 똑똑했어요.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맘충'으로 불리죠. '맘충' 번역도 어려웠어요. 결국 'Mum-roach'로 번역했죠.

Q. 번역하며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번역하는 내내 잊지 않으려고 한 것은 김지영의 이야기가 정신과 의사를 통해 전해진다는 것이었어요. 책을 읽었을 때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바로 그 유명한 마지막 줄이었어요. 얼굴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처음에는 이 의사가 김지영의 인생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려줄 것 같아요. 하지만 알고 보면 의사는 여성혐오가 뿌리 깊게 박힌 사람이고, 그런 그가 김지영의 이야기를 서술해요.

그렇기 때문에 번역하며 '그가 무엇을 빠뜨렸을까?', '어떤 것을 검열했지?', ' 축소시킨 것은?'를 끊임없이 물었어요.

김지영이 나아져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서술하기 전까지, 독자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82년생 제이미 챙의 이야기

Q. 이제 '82년생 제이미' 얘기를 해 볼까요. 박혜정 씨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미국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2006년 여름에 부산에 SAT를 가르치러 왔었어요. 당시 부산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커밍아웃을 한지 꽤 되었는데, 뭔가 다시 성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것 같아 매우 이상했죠.

지인이 (혜정씨를) 소개해줬고, 한 달 정도 만났어요.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2주 만에 그만두고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다행히 잘 됐죠.

(제이미 챙은 2001년 커밍아웃했다.)

Q. 파트너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어요?

만나는 동안 계속 '이 사람이야' 싶었어요. 제가 만나 본 제 나이대 사람 중 감정적으로, 심적으로 가장 안정된 사람이었거든요. 자신의 성 정체성도 편하게 생각하고요. '정말 드문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동성애자에게 20대는 매우 힘들 수 있거든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아에 대한 불확실성, 내적 갈등을 많이 겪어요. 근데 제 파트너는 그런게 전혀 없었어요.

Q.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파트너는 좀 특별한 케이스예요. 우선 학부 내내 여성 운동을 했어요. 파트너 부모님 양육 철학도 한몫했죠. 부모님은 파트너를 사랑하고 지지하지만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스타일이세요.

파트너가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지만 오래가지 않았어요. 이제 가족 모두 저희 관계를 아시고, 저희도 가족 행사에 꼭 참석해요. 다들 저에게 잘 해주시고, 저는 남자들과 겸상하고, 아버님과 같이 야구 경기를 보죠. (웃음)

Q. 결혼식도 올렸다고 들었어요.

2006년 10월부터 같이 살았고, 2009년 비공식적 언약식도 가졌어요. 그리고 2011년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결혼식을 했죠.

결혼식을 하기 전부터 같이 살았고 금전적으로도 상호 의존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단, 결혼식을 한 이유는 당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로의) 이민을 생각했기 때문에요. 이민을 갈 때 제가 '주 신청자(primary applicant)'로, 파트너가 '배우자(spouse)'로 입국을 하기 위해서였죠. 2013년 덴마크에 그런 식으로 갔어요.

Q. 덴마크는 왜 가게 됐나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어서 가게 됐어요. 인공수정을 몇 번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 됐죠.

인공수정을 하며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생물학적 레즈비언 엄마가 된다는 것, 비생물학적 레즈비언 엄마가 된다는 것 등에 대해 많이 읽기도 했어요.

주위 이성 부부에게 묻기도 했는데 대부분이 '그냥 임신해서 부모가 됐어'라고 답했죠. 저희 부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모가 될 수는 없으니 의도적으로 계획해야 했고요.

임신을 계획하며 깨달은 것은 아이가 생기면 파트너와 저 둘 중의 한 명은 정규직 사무직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는데, 저희 둘 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물론 아직 36세(만나이 기준)이니 앞으로 생각이 바뀔 수 있겠죠.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Q. 한국 사회가 동성애자를 보는 시각은 어떻다고 보세요?

제가 뭘 입든, 제 헤어스타일이 어떻든 (한국 사회는) 당연히 제가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보는 거 같아요. 밖에서 파트너와 손도 잡고 안기도 하는데, 아직 일반 사람들은 저희가 친구 이상일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어 하는 것 같고요.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죠. 저한테 동성애자 혐오적인 발언을 하거나, 저를 공격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외국에서 자라서 사람들이 제가 레즈비언임을 허락하고 커밍아웃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Q. LGBTQ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없요?

지난해 제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었는데 직계가족이 의료기록을 떼와야 했어요. 가족이 다 외국에 있고 파트너만 있다고 하니 혼인증명서가 있으면 파트너가 가져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동성부부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도 지난해에 알게 됐어요.

또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변화도 있어요. 소설 속 동성애자 캐릭터인데,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라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당당히) 사는 모습을 보여줘요. SF에서처럼, 상상과 소설에서 시작된 것이 현실 사회에서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죠.

한국에서만 자란 10대들은 동성애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혐오적 언어에 둘러싸여 자라서 커밍아웃을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제 성정체성을 편하게 느끼고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은 제가 커밍아웃하고 첫 동성관계를 가질 때 주변이 매우 지지하는 분위기였어요.

너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지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김지영이 무너진 것은 혼자, 고립되어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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